토요일 한낮의 소란.

아마추어 뮤지컬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마추어 뮤지컬 극단은 이렇게 흘러간다. 하나의 작품을 고른다. 극단 내 오디션을 보거나 모집을 통해 사람을 모은다. 극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 쇼뮤지컬인 경우, 더블캐스팅, 앙상블까지 합쳐 약 2-30명의 사람이 모인다. 모두 각자 본업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이다. 뮤지컬을 하기 위해 생업을 가진 배우들이 아니라, 정말로 본업이 있는데 그저 뮤지컬을 하고 싶어 모인 아마추어들이다. 한 번 공연을 올리는데에 몇백, 천 단위의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약 4-6개월에 걸쳐, 매주 주말 하루 시간을 내어 정기 연습을 한다. 공연이 가까워지면, 한 두달은 주중에도 여러번, 많을때는 주 4회 퇴근 후 시간을 내어 연습을 한다. 평범한 직장인들 수십명이 모이는 것도, 그들이 퇴근 후 그리고 주말 시간을 내어 고된 연습을 하는 것도, 연기와 노래, 춤을 '공연이라 봐줄만큼', 다른 말로는 관객들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해내기 위해 애쓴다. 무대 위의 일 뿐만 아니라 무대 세트를 제작하고 설치하고, 소품을 제작하고, 조명, 음향까지 모두 챙겨 자체적으로 공연을 해낸다. 기어코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토요일 낮, 연습실의 소란이 일어난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각자 의상을 갈아입고, 누군가는 무대를 옮기고, 누군가는 소품을 챙기라며 소리치고, 누군가는 모니터링 영상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각도가 맞나 세심하게 체크하고 있다. 한 쪽 구석에서는 긴장된 얼굴로 자신의 대사와 행동을 몇번이고 되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모여 화이팅 콜을 한다. 텐션을 끌어올리자며 소리도 지른다. 진지한 얼굴로 상하수 위치에서 자기 등장 차례를 기다린다. 무대에 등장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약속된 연기를 해낸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해내기 위해 애쓴다. 연습한 것들을 쏟아낸다. 그 소란을 보면, 매번 볼 때마다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 이만큼 나이가 찬 사람들이, 본업에 바쁜 사람들을,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함께 하도록 하는게 가능한 일이라니.

최근에 조금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 속상했다고 해야 하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내가 너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20대를 이곳에서 보낸 사람들은 늘 그 때 얼마나 행복하고 재미있었는지 이야기한다. 시간만 많고 열정만 넘치던 때, 좌충우돌하며 가족이 되었던 시간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 앞에서 30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진짜로 함께하게 된 나로서는, 그것이 부러웠다. 나는 20대 내내, 누군가와 공연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대학생이 되자 신이 나서 무작정 했는데 내가 너무 민폐가 된다고 느꼈다. 내가 공연을 참여하는 것이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것이라고, 그러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보고 스펙을 쌓고 취직을 해야 할 시간에 공연같은 것을 하는 것은 정신병이라는 생각도 했다. 무슨 예술이 하고 싶다거나 프로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거창한 마음 근처까지 가보지도 않았다. 그냥 동아리의 공연 같은거, 너도 나도 그냥 좋아서 하는 사람들의 어설픈 공연같은 걸 같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깟거 그냥 해도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제와서야 겨우 하게 되었으니 더 부러울 수 밖에. 그래서 그들이 했던 경험을 나도 하고 싶어서 기를 썼다. 이미 해본 사람들 앞에서 혼자 그 경험을 하려고 기를 쓴다고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도 내가 공연을 참여하는 것이 민폐같다는 생각도 또 했고,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도 했던 것 같고, 그러다가 지레 혼자 지쳐서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 앞에서 안간힘을 써서 붙잡았다. 도망치지 않기 위해 기를 썼다. 아무리 내가 애를 써도 내가 20대 내내 부러워 했던 그런 경험을 가질 수는 없는 것 같아 속이 상했던 것 같다.

두번째는 이건 전혀 특별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경험이었다는 것을 직면하는 것이 힘들었다. 다들 그냥 해볼까? 하고 쉽게 하는 경험. 나는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너무 힘이 들었어서, 여기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내가 이런 멋진 공연을 함께 하고 있다는게 너무 좋아서 온갖 의미를 갖다 붙이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었다. 그런데 말이지. 사실 이건 대단한 경험도 아니고 특별한 경험도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겐 그냥 흔하디 흔한 경험이었다. 그것을 업으로 하고 있는 이들에겐, 업이 아니더라도 오래 해본 이들에겐 다소 우스워보였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마주하면 좀 쪽팔렸다. 교수 앞에서 개론 수업 하나 듣고 잘난체 하는 학부생이 된 심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걸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라고 인정받고 싶어졌던 것 같다. 내가 안간힘을 써도 번번이 미끄러지던 그 긴 시간들을 보상해줄만큼, 아주 대단한 가치가 있는 멋진 경험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전처럼 이 경험에도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받고 싶었다.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내가 애써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는 배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누군가가 그런 확신이나 인정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 경험이 남들의 것보다 특별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쿨해지기엔 너무 깊이 베이고 오래 곪았던 것 같다. 내 자존감을 높이자는 깔끔한 말로 마음이 정리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래도 토요일 낮 연습실의 소란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이게 놀랍고 특별한 사건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세상에 이런 사건이 얼마나 많았든, 얼마나 흔하든, 이것도 특별한 사건이라고. 무엇보다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잠깐이나마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