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꿈을 쓰고
2021년
2021년, 평생 한 번도 소설을 써본 적이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소설을 쓰게 되었었다. 가수 이승윤의 '가짜꿈'에서 시작된 문장을 이어 쓰는 소설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상상할 그릇이 되지 않아서 나를 그렸다. 되풀이해서 다가가는 생각들, 그러나 정작 가닿지는 못하는 생각들을 명확한 문장으로 구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푹 빠져서 몇날 며칠 글을 썼고, 내가 나를 만나게 했다.
소설이라 결말을 내야 하는데, 도무지 결말을 어떻게 내야할지 모르겠는 거다. 평소의 나라면, '어른이 되려는 나'로 결론을 내고 덮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니까 단정한 결말을 내야 할 것 같았다. 좋은 결말이라기보다는 단정한, 혹은 단단한 결말. 그래서 결국 춤을 추기로 선택하고, 춤추고 싶은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결말을 썼다. 솔직히 말하면 그 결말을 스스로 믿지는 못했다. 사실, 함께 춤추다가 드러누워 웃던 연습실 같은 것도 내게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냥 소설은 그렇게 써야 할 것 같아서 썼다.
2025년
지금 내겐 그런 연습실들이 생겼다. 이수역 9번 출구의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 스타벅스를 지나치면 칠이 벗겨진 낡은 흰색 문이 있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 퀴퀴한 화장실 냄새가 나는 연습실이 있다. 자물쇠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면, 안녕!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웃고 떠들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 안식, 디오스페이스, 마온, 파랑홀, 힐러,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많은 연습실들. 연습실 안에는 따듯한 빛이 고인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제 연습실에 관해서라면, 아니 연습실 안의 우리의에 관해서라면 밤새 이야기할 수 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었던 사람들의 모습들, 와중에 아 나 이런 걸 너무 사랑해! 라고 느꼈던 벅찬 감정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면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오랜만에 다시 내가 쓴 이 조악한 소설을 읽었는데, 내가 썼던 문장들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작 나는 믿지 못했는데. 마치 내가 믿지 못하는 것을 계속 말해주겠다는 나처럼, 그렇게 쓰면서도 그 말을 믿지 못하는 나에게 이 소설이 계속 그 말을 해주었던 걸지도 모른다.
독자도 없고, 문학성 같은 건 없는 나만의 소설이지만, 나를 도와주었다. 단단한 말은 (내가 아무리 불신하는 마음으로 썼더라도) 물리적인 힘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래서 소설을 쓰고 읽는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쓰고 계속 읽고 계속 춤을 춰야지.
사실 위의 문장도, 너무 쉽고 낭만적인 것 아닐까 잠깐 생각했는데, 이 문장 역시 같은 방식으로 나를 구할거라고 믿고 써버리기로 했다. 앞으로도 계속 쓰고 계속 읽고 계속 춤을 춰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