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꿈

1.

오늘도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망치질 소리가 시작됐다. 희가 기억할 수 있는 과거부터 망치질 소리는 매일 아침에 시작되어 규칙적이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다 밤이 되어서야 멈췄다. 희가 이 소리가 ‘망치질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어폰을 꽂았다. 소음이 거슬렸다. 꽝꽝꽝꽝꽝, 쇳소리는 정확히 5번씩 울리다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아득하게 먼 곳에서부터 귀를 긁어대다가 부서지는 소리. 소란이 멀리서 바스라졌다. 희미하게 불안했다. 소리가 못이 짓밟히는 모양이라는 걸 깨달은 건 며칠 전이었다. 못이 바닥에 완전히 눌러 붙을 때까지 두드려 대는 것이 분명했다. 저러다 건물 무너지는 거 아닌가. 희는 생각했다. 건물 무너지면 출근 안 해도 되나. 이어폰을 도로 빼며 옆자리에 말을 걸었다.

“이 번엔 또 무슨 공사에요? 지겨워 죽겠네.”

“공사요?”

“지금 꽝꽝하는 거. 어디 공사하는 거 아니에요?”

“공사 끝났는데. 3층에 삼진인가 뭔가 지난 주에 입주했어요.”

“저 소리 안 들려요? 계속 꽝꽝대는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2.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머릿속을 울리는 망치질이 하루를 괴롭혔다. 대체 어디서 나는 걸까.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이상한 눈초리뿐이었다. 평온한 사람들 속에서 유난한 두통에 시달렸다.

J만이 자신도 소음을 듣는다고 했다. J는 얼마 전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병가를 내려는 그에게 부장이 재차 출근을 물었다. 그래 아프면 쉬어야지, 그런데 출근은 영 안 되겠니, 이거 다음 주까지는 되어야 하는데. 그는 이틀만에 출근했고 이후로 내내 망치질 소리를 들었다. “디스크 수술은 튀어나온 뼈를 망치로 박는 수술인가보다 했어, 급하게 박느라 미처 밟지 못한 것들이 남아서, 계속 꽝꽝 찍어 대는구나, 그러게 왜 혼자 튀어, 하고.”

“… 그런데 말이야, 어쩔 땐 밖에서 들리는 거 아닌가 싶어. 왜 있잖아, 비상 계단 밑 창고. 거기 문 뒤에서 꽝꽝꽝꽝꽝. 너무 또렷해서 안에 누가 갇혀 있기라도 한 거 아닌가, 다들 모르는 척하는 거 아닌가,

뭐, 다 수술 스트레스인가 보지,” J는 덧붙였다.

3.

J의 말을 듣고 난 뒤로는 정말 창고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종종 망치질이 그치지 않을 때 계단을 내려가면, 문 뒤에서 어렴풋한 소란이 불어왔다. 오래되어 틀어진 문은 세게 잡아당기면 열릴 것도 같았다. 하지만 희는 두어 번 문고리를 돌려 보고 등을 돌렸다. 문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겁났고, 어쨌든 소음은 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경을 좀 긁었지만 소음은 참을 수 있었다. 꽝꽝, 박자에 맞춰 손이 찧이는 상상을 했지만 이내 잊었고 다시 엑셀을 두드렸다. 무시할 수 있었다. 가끔은 숨이 막혀 화장실에 숨어 다리를 끌어안아야 했지만 곧 괜찮아졌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소리는 슬금슬금 하루를 잡아먹어, 낮에 시작된 소리가 아침에도, 밤에도, 간혹 새벽에도 귀에 울렸지만 견딜 수 있었다. 오래 달리기처럼 견디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희는 어린 시절부터 오래 달리기를 잘했다. 운동엔 소질이 없었지만 오래 달리기만큼은 쉬웠다. 시키는 대로 참기면 하면 되었다. 숨이 차 쓰러질 것 같아도 숨을 꽉 누르고 몸을 무시하고 발을 디뎠다. 희는 언제나 오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돌던 그 때처럼, 소음, 두통, 어떤 말과 시간들도 무시했다.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4.

어떤 말과 시간들. 어떤 날에 팀장이 어떤 말들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심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나 듣는 말이고, 그렇구나 넘기면 되는 말들이었다. 내 앞의 너도 회사에서 어떤 말들을 삼켰겠지. 너도, 나도, 각자 잊어버릴 말들.

그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큰 회의가 있었는데, 팀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꾹 움켜진 손으로 화장실 문을 잠갔던 것만 기억난다. 적당히 울고 나가면 될 일이었다.

다만, 다만 소음이 거슬렸다. 그러니까 팀장의 말이 아니라 소음을 참을 수 없었던 거다. 그날따라 화장실이 온통 울리게 깽깽거려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그래서.

희는 뛰어내려가 지하실 문을 홱 잡아 틀었다. 아래로, 더 아래로. 몸이 덜덜 떨리고 한기가 돌았다. 바람이 고이고, 빛이 뒤처질 즈음에,

그 곳이 있었다.

못더미와 찌그러진 망치와 못박힌 바닥과 벽과 천장.

작게 웅크린 그.

5.

희가 다니던 학교에는 낡은 강당이 하나 있었다. 건물을 돌아 문을 따고 내려가면 습한 먼지 냄새가 났다. 고장난 핀 조명이 서넛 달려 있었고, 무대는 나무판을 쌓아 올린 것이 고작이었다. 나무판은 못과 가시가 잔뜩 박혀 있어 청테이프를 여러 겹 발라야 했다. 그러고도 살이 빨갛게 쓸렸다.

그 곳에서 우리는 춤을 췄다. 맞아, 춤을 췄지. 참지 않고 숨을 쉬었다. 방향없이 달렸다. 마디와 마디 사이에 숨을 불어넣었다. 춤추는 우리에 대해서는 몇 페이지고 쓸 수 있고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박자를 끝까지 채워 숨을 쉬고, 쿵. 쿵. 베이스에 맞춰 발을 차고, 심장이 덜컹거리게 세차게 머리를 흔들다 대자로 누워 함께 웃었다.

나를 함부로 대해 본 적이 있었어.

발바닥으로 고르게 바닥을 딛고 어깨를 내리고 서야 해. 밀리지도 넘어지지도 않게 단단히 서면, 마음이 차가운 파도처럼 나에게 밀려와. 파도 속에서 나는 있는 힘껏 팔을 내리치고 휘젓고 꺾고 발을 찍고 다리를 차고 다리를 찢고 다시 어깨를 바닥과 부딪혀 구르고 바닥을 밀어내고 다시 바닥에 떨어져.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널부러져 숨을 쉬면 온 몸이 아파서 웃을 수 있었어. 참을 수 없이 밀려오는 마음에 온 몸이 살아 날뛰어, 바닥에 누워 숨을 골라야 했던 지하실이 있었다.

6.

희는 그 곳에서 마지막으로 도망친 사람이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혼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쪽팔려서, 누군가는 취업하고 누군가는 합격할 때 나만 취준생 딱지를 붙이고 가라앉는 것이 무서워서 서둘러 도망쳤다. 가까스로 취업한 뒤에는 사진을 모조리 버리고 잊어버렸다.

소비자로 사는 것이 좋았다. 무대는, 어쩌면 감정까지도 소수의 것이었다. 제 역할을 하는 사회인으로 살며 그들이 해주는 예쁜 말에 위안을 얻는 것으로 충분했다. 유별난 감상에 취하고 싶지 않았다. 음악과 춤과 글과 마음과 울음과 웃음과 무해함은 묻었다.

때때로 인스타그램 광고가 누구나 춤을 살 수 있어, 하고 속삭였지만 거짓말이다. 자격있는 이들의 춤조차 허공을 떠도는 것만 같은데, 형태를 이루지 못한 내 움직임은 무가치하다. 아무도, 자신조차 구하지 못한다. 아무도 해치지 않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해함, 둥근 것, 판타지, 가짜, 예쁜 거짓말.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은 충분히 대단한 삶이었다. 감히 본인 따위가, 제 삶을 대단하게 살아내는 어른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아 역했다. 충분함보다 많은 것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기로 했다. 그럴 수 있었다. 정말이야, 잘 할 수 있었어. 빌어먹을 저 새끼만 아니면.

그런데 왜 다시 여기지.

그가 희를 본다.

“희야.”

7.

알고 있었다. 내가 못을 짓밟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꽝꽝 내리치며 화풀이를 하는 것도. 모조리 찍어버리려 하는 것도, 사진 없이도 모조리 기억하는 것도, 문을 잠근 것도, 돌아 다시 문 앞에 서는 것도, 전부.

“희야…나는 네가 다시 춤추면 좋겠어.”

하지만 이게 옳은 거잖아.

“몸을 던지고, 팔을 흔들고, 함부로 뛰어다니고, 숨을 힘껏 들이마셔 점프하고, 누워 숨을 몰아쉬고, 온 몸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고, 그렇게 엉망진창 춤을…

엉망으로 너의 춤을 췄으면 좋겠어.”

거짓말이다.

“내가 거짓말을 해줄게. 네가 속아 넘어갈 때까지.”

“여길 봐, 이게 너야.”

8.

걷는다. 그를 본다. 납작해졌지만 밟히지 못한 못들에 발이 걸려 피가 난다. 두 팔을 펼치고 빙글빙글 돈다. 모로 눕는다. 몸이 바닥을 쓸고 못이 박힌다. 찢기고 찍혀 온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직접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