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하게 살기

일의 태도가 곧 삶의 태도

"일을 잘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은,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모든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을 하는 태도가 곧 삶의 태도라는 말을 좋아한다. 일이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에서 배운 태도가 곧 내 삶을 잘 살 수 있는 나의 무기이자 자산이 된다고 믿는다.(믿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일을 하는 대부분의 순간들은 그저 답답하고 짜증날 때가 많지만, 어쨌든 내 일에서 배운 것들을 내 삶에 적용하고, 그러기 위해 일에서 배울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배우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일과 삶이 서로 연결될 때 즐겁다. 최근에는 '애자일' 방식을 삶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자일과 워터폴

IT업계에는 '워터폴'과 '애자일'이라는 개념이 있다. 워터폴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러 몇개월에서 몇년을 쏟아부어, 완벽한 제품을 완성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수십번의 시장조사, 연구개발, QA(품질검사),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버리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한 끝에 나온 완성작이다.

반대로 애자일은, '대충' 만들어 시장에 그냥 던지는 것이다. 만약 아무도 안 사면? 또 다른 걸 대충 만들어 시장에 팔아본다. 반응이 좋으면? '대충' 빨리 바퀴 하나만 붙여 또 팔아본다. 얼마나 대충이냐면, 보통 일주일 - 길어도 2주일 단위로 프로젝트가 돌아간다. (이걸 스크럼이라고 한다.)

회사에서는 모두가 애자일하게 일하자며 외치지만 막상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워터폴로 흘러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불완전한 모습이 보여지는 것이 부끄럽고, 또 다들 의외로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애자일 방법론을 삶에 적용해보자

문득, 삶도 애자일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일을 할 땐 모든 프로젝트가 워터폴로 흘러가는게 답답했다. 고객들과 소통하는게 중요하지 내 욕심이 중요한가? 그런데 막상 나는 내 삶을 워터폴로 살려고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시간 공들여 완벽하게 깎아낸 조각만을 선보이려고 했던 것 같다. 몇달을 공들여 만든 프로젝트만을 포트폴리오에 올리고, 몇년을 공들여 공부한 후에만 도전하고 싶었다. 사이사이 '미완성된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쪽팔렸다. 나는 시간만 주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야. 이런 걸로 평가받고 싶지 않아!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 깨닫고 나니 회사 동료들의 심리가 이해가 갔다. 내 욕심, 내 자아가 들어가면 공들인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의 심리였던 거다. (회사 프로젝트를 할 땐 내 자존심이 안 들어가서 그렇게 쿨할 수 있던 거였다ㅎ..)

하지만 자연스러운 사람 심리랑 달리 보통, 아니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애자일 프로젝트가 훨씬 더 성과가 좋다. 왜냐면 양은 언제나 질을 이기고, 완성이 언제나 완벽을 이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를 판단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고객(관객)이다.

요즘 춤을 배우는 곳에서는 매주 안무를 만들어 발표해야 한다. 춤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써는 허우적대는 내 모습을 매주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다. 매주 과제를 하면서 시간만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이번주만 미룬다고 할까 매번 고민하고, 나도 춤을 몇년동안 배웠다면 이것보단 잘했을 거라며 속상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것도 결국 일주일 단위의 스크럼일 뿐이고, 더 짧게, 더 자주, 더 많이 만들어보는 것이 좋다. 자주 보여줄수록 고객(관객)의 피드백도 더 많이 들을 수 있고, 훨씬 효율적/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만약 제품이 고객 반응이 안 좋으면 ? 빨리 수정해서 업데이트하면 되지 내가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춤도 관객 반응을 반영해서 빨리 하나라도 더 시도하는게 이득이다.

춤 뿐만이 아니라, 이직할 때도, 개인 프로젝트를 할 때도, 하다못해 여행을 계획할때도 같은 태도로 살아볼 수도 있겠다. 더 자주 더 많이 해볼 것, 완벽하려고 하기보다 완성할 것, 부끄러워하지 말 것, 일단 보여주고 고객/관객/사람들의 피드백을 수용할 것, 피드백을 내 자아와 분리할 것, 피드백을 통해 더 효과적/효율적으로 성장할 것.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다음 스크럼으로 넘어가 또다시 시도할 것.

언제나 그렇듯 말은 쉬운데, 실천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한 번 해봅시다!

그리고, 일을 통해 내 삶에도 적용할만큼 효과적인 방법론을 얻었다는 것이 꽤 마음에 든다. 이러려고 개발을 배웠지. 난 내 직업 도메인 하나만큼은 잘 고른 것 같다. :)

추신

또다른 재밌는 것들.

모듈화하기. 코딩할 땐 '모듈화(객체화)'가 중요하다. 현업에서 코드는 몇십만, 몇백만줄인데, 어차피 전체의 복잡함을 관리할 수 없으므로, 객체로 쪼개서 관리하면 각각의 객체 안에서 '감당 가능한 정도의' 복잡함만 다루는 것이 좋다. 그래서 우리집 물건들도 모두 모듈화(객체화) 되어있다. 어차피 내 방은 항상 지저분할 것이므로(...) 방을 깨끗하게 치우려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구획별로 객체화하고 그 안에 물건을 모두 몰아넣는다. 옷 칸/ 청소용품 칸/ 화장품 칸 등등. 그러면 각 칸은이 지저분해도 대충 그 칸에서만 찾으면 되니까 어쨌든 감당 가능하다 ! 하하.

우리 집 한 켠에 캐싱존도 마련되어 있다 ! 매일 입는 외투, 가방은 어차피 내일 다시 꺼내야 하므로 대충 캐싱존에 벗어던져놓는다. 캐싱이란게 결국 멀리있는 저장 장소까지 가는데 비용이 드니까 가까운 메모리에 처박아두는 거니까, 대충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일상이 좀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 일과 일상에서 재미를 찾는 방법이다.

*이원흥, "일의 태도와 삶의 태도가 다르지 않아요", 채널예스